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C. 마셜 (문단 편집) === 제2차 세계 대전 ===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일어나자 [[1939년]]에는 [[소장(계급)|소장]]이 되었고, 9월 1일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 대통령에게 제15대 [[육군참모총장]]으로 지명됐다. 참모총장이 되며 임시 대장으로 승진[*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맥아더 역시 소장에서 임시 대장으로 진급해 육군참모총장이 된 바가 있다.], 유럽 반격계획(노르망디 상륙작전)을 입안, 지도했고, 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연합군이 전쟁에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.[* 아이젠하워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연합군 전체를 지휘하는 자리에 있었다. 스포츠로 바꿔보면 [[감독]](아이젠하워)과 단장(마셜) 같은 사이.] [[1943년]]에는, 타임지의 「올해의 인물」에도 선정되어 명성의 절정을 달렸으며, [[1944년]] 12월 드디어 [[원수(계급)|원수]]가 되었다. 2차 대전 시기 육군 원수 중에서 [[미국육군사관학교|웨스트포인트]] 출신이 아닌 인물은 마셜이 유일하다. 태평양 전쟁 중에는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인 [[더글러스 맥아더]] 원수나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[[체스터 니미츠]] 원수와는 달리, 소련이 일본을 치게 해야한다는 주장을 펴서 결국 [[만주 전략 공세 작전|1945년 8월 9일]]부로 소련군을 대일 전선에 끌어들였다.[* 이때 일본군에서는 "소련한테 전쟁 물자 좀 얻어봅시다. 이왕이면 내분도 일으켜보고. 안 되면 소련한테 평화 회담을 주선해달라고 합시다"라고 제안했다. 물론 외교 담당자들의 반응은 "나치하고 편먹었던 우리가 소련한테 물자를 받는다고요? 거기에다 미국하고 소련을 이간질 시키겠다고요? 정신 나갔어요?"] 전쟁이 끝난 후, 육군참모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.(육군 원수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